김용수 기자 기사입력  2020/02/26 [16:14]
텃세부리지 말고 텃새로 살자
칼럼니스트 김용수의 ‘세상 엿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텃세는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에서 발로한 기득권을 교묘하게 표출하면서 은근히 기세를 부린다. , 텃세를 부린다는 것이다. 그 텃세는 장터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3일이나 5, 전통시장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옆자리에서 자신과 같은 물건을 팔지 못하게 하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모든 분야에서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다 텃세를 부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만큼 텃세를 부리는 생명체는 없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텃세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예를 들어 군대, 학교, 직장 등 모든 조직에서 텃세는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는 이런 텃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만연되고 있으며, 각종 부작용이 파생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새의 영역을 살펴볼까 한다. 텃새를 피력하기 위해서는 철새를 대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텃새는 참새, 까마귀, 까치 등과 같이 일 년 내 내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번식을 하는 조류다.

 

반면 철새는 호수가 있는 풀밭이나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한 때를 지내다가 계절이 바뀌면 돌아가는 조류들이다. , 제비와 기러기, 두루미 등이다. 이 철새들은 강인하고 영리하다. 게다가 그 철새들은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서 수천 키로 미터를 날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 비춰보면 텃새와 철새의 삶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텃새는 한정된 영역에서 먹이와 둥지를 지키기 위해 늘 동종끼리도 싸워야하고 뭉치지를 못한다. 또 텃새는 나름대로의 생활을 하다 보니 시야가 좁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요즘은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해 철새들이 텃새를 쫒아 내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산업사회의 괴리로 비쳐지지만 요즘 농촌지역사회의 변천과정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농경사회에서 농공사회로, 상공사회로, 산업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 사회변천과정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의 농촌사회는 너무도 변했다. 그 중에서도 인구감소는 농촌사회를 대변하는 듯싶다.

 

그렇다. 농촌지역의 인구감소로 인한 부작용은 속출하고 있다. 일손이 넘쳐나던 그 때와는 달리 외국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펼친 정부의 귀농, 귀촌, 귀향 등의 정책들이 허사로 비쳐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텃세라는 부작용으로 표류하는 정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농촌지역을 벗어나 도시의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지난날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 때는 가난한 농촌생활이 싫었었다. 도시의 산업전선에서 일을 하고 그 보수로 도시생활을 하는 것이 대수였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도시유입은 우리의 농촌을 떠나 산업경제를 살찌게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귀농, 귀촌, 귀향은 지역의 텃세에 눌리어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타인이며, 이방인이다. 마을주민들과의 어울림을 노력해 보지만 어렵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을 사귀려고 애를 써 보지만 허사라는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구설수에 오르기 쉽고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물론 도시생활에 젖은 이들에게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도시의 아파트촌에서 이웃을 모르고 자신만의 생활을 지속했었던 사람들이기에 이웃사랑을 모르고 공동생활에 무디어 졌으리라 믿는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지역농촌사회인들과 귀농, 귀촌, 귀향하는 사람들 간의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가 위하고 양보하는 삶, 이웃사랑을 실천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필자는 우림친구가 살고 있는 전남 고흥지역을 돌아본다.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감소가 제일심한 지역이기에 그곳의 귀농, 귀촌, 귀향 등의 현실을 보고 듣는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귀농, 귀촌, 귀향하는 사람들과 텃세를 부리는 지역사람들의 반목과 갈등이다.

 

지구촌에서 모든 생물체의 텃세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조그만 땅덩어리,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더욱 쪼그만 지역사회에서 텃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 우리사회에서 텃세가 존재한다는 것은 파열음과 소음의 연속이다.

 

아무튼 그 지역을 지킬 줄 알고 대표하는 텃새마냥 순수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좁은 시야와 강인한 힘은 지니지 않았어도 순수함이 넘치는 농촌 그대로의 삶을 누리기를 기대해 본다. 서로서로가 위하고 사랑하는 농촌사회가 그립다.

 

까치가 사는 곳에 텃새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텃세가 있다

 

반가움을 물고 오는 텃새자리와

무서움을 몰고 오는 텃세자리를

텃새들은 안다 사람들은 모른다

 

자리를 뺏기며 세에 눌리는 텃새

자리를 지키며 세를 부리는 사람

대자연은 안다 하늘땅은 모른다

 

너는 힘이 없는 텃새

나는 힘이 있는 텃세

 

새와 세를

아와 어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별해 부리는 텃새는 없어도

은근히 부리는 텃세는 다수다

 

새야! 웃어라 웃어!

내 자리 비켜준다고

세야! 울어라 울어!

네 자리 지켜준다고

(필자의 텃새와 텃세전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nbcnews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광고